좋은교사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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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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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교사운동 현승호입니다. 어느덧 저의 공동대표 임기 4년 중 이제 2026년 한 해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 직분을 맡기 위해 학교를 휴직하고, 제주에 처자식을 남겨두고, 사무실 근처 숙소에서 지내며 제주와 서울을 오간 지 어언 3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선생님, 오늘 제가 선생님께 편지를 드리는 이유는 한 가지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입니다. 그 부탁은 다름 아니라 선생님께서 좋은교사운동의 월정 후원자로 참여해 제가 감당하고자 하는 이 사역에 동참해 주시기를 간곡히 요청드리고 싶어서입니다.

 1년이 52주인데 거의 매주 제주와 서울을 오갔으니 1년에 대략 100번의 비행을 한 셈입니다. 이제 앞으로 몇 번만 더 하면 약 300번의 비행을 하게 됩니다. 공동대표를 수락하고 실은 처음부터 이렇게 매주 제주와 서울을 오가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격주로 한 주는 서울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한 주는 제주에서 재택근무를 하면서 체력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부담을 줄이려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 처음 몇 개월은 그렇게 사역했습니다. 그런데 2023년 7월 서이초 사건이 터지면서 그런 생활은 자연스레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많은 선생님의 울분이 터져 나왔고, “이럴 때 좋은교사운동은 뭘 하느냐?”라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원망 섞인 말씀들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말씀을 따라, 긴급하게 애도 서클을 진행했습니다. 많은 선생님과 눈물이 마를 때까지 함께 울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2023년 7월 어느 날, 국회 토론회에 토론자로 초대되었습니다. 그동안 좋은교사운동이 안전한 교육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고민했던 내용을 짧은 시간에 발표해야 했기에 새벽까지 문장을 다듬고 단어를 고쳐가며 준비해야 했습니다. 처음 참석하는 국회 토론회를 앞두고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들의 눈물을 닦아 달라고, 우리 선생님들을 위로해 달라고 말입니다. 당일 아침 미국에서부터 카톡이 왔습니다. 좋은교사운동 선배님이셨고, 지금은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신 안준길 교수님이 미국의 사례를 장문의 카톡으로 보내주셨습니다. 국회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발표문을 수정하고 미국 사례를 추가했습니다. 다소 긴 발표문을 줄이기 위해 앞에 애도문을 빼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옆에 앉으신 선생님께서 본인은 짧게 이야기할 것이니, 편안히 하시라고 먼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에 부담을 덜고 애도문과 토론문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발표를 모두 마치고 휴대폰을 켰는데, 수십 개의 카톡과 메시지가 와 있었습니다. 일부는 제가 모르는 분에게도 연락이 와 있었습니다. 커뮤니티의 댓글을 복사해서 보내주시기도 했습니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구구절절 다 맞습니다.”
“저는 교사도 아니지만 모두에 말씀하신 애도문이 가슴에 깊이 다가옵니다.”
“완전 완전 공감합니다. 한마디 한마디 다 맞는 말입니다. 제대로 받아들여지길요. 감사합니다.”
“너무 정확해서 눈물까지 나네요. 꼭 변화가 생기길 기도합니다.”
“정확한 진단과 방법입니다. 선생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좋은교사운동 가입하려고 하는데 개종해야 하나요?”

 초등교사 커뮤니티에서는 좋은교사운동이 어디냐? 뭐 하는 단체냐? 어떻게 가입할 수 있냐? 하는 댓글이 쏟아졌고, 순간 저희 좋은교사운동 홈페이지가 접속량을 감당하지 못해 다운되기도 했습니다. 가장 반가운 것은 저희 좋은교사운동 회원 선생님이 위로를 얻으신 것이었습니다. 카카오 오픈채팅방에 좋은교사운동 회원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분들의 글이 올라오는 것이 제일 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제가 발언한 내용이 그동안 좋은교사운동이 꾸준히 일관되게 주장하던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미국 사례를 제외하고는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그 내용이 그동안 주목을 못 받았을 뿐, 좋은교사운동은 늘 같은 주장을 해 왔고 그것이 이번에 주목을 받았을 뿐이었습니다. 

 이후에 일명 ‘전국교사일동’ 교사들의 요청으로 한 번도 모여 본 적 없던 6개 교원단체가 한자리에 설 때에도, 그 연대와 연합을 제안하고 이끄신 분이 다름 아닌 좋은교사운동 회원 선생님이었습니다. 지금은 교원단체들이 한목소리를 내는 일이 많아졌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섞이지 못하고 자기 단체 이름을 앞에 넣어야 한다면서 티격태격할 때, 좋은교사운동은 가장 말석에 앉기를 자처하며, 윤활유 역할을 하여 6개 교원단체와 교권 5법을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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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집회에 참석할 때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 집회를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예배로 바꾸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실시한 것이 집회 후 회원모임이었습니다. 더운 여름, 집회를 마치면 인근 카페는 늘 만원으로 북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좋은교사운동 회원들이 모여 쉬면서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빌렸습니다. 그리곤 집회 후 시원한 커피 마시러 오시라고 홍보했습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공간을 찾아 주셨고, 그곳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집회를 열었습니다. 아니, 예배를 드렸습니다. 함께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이 교사 집회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바꾸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찾아온 2023년 9월 4일! 서이초 선생님 49재 추모 집회가 다가왔습니다. 교사들은 연차를 내고 집회에 참석하고자 했습니다. 몇몇 학교에서는 교육공동체가 합의해서 재량휴업일을 지정하는 등 평화롭게  ‘공교육 멈춤의 날’이 이뤄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교육부가 갑작스레 징계 원칙을 언급함으로써 학교는 큰 혼란을 겪게 되었습니다. 후배를 걱정하며 만류하는 선배 교사, 징계받아도 좋다는 후배 교사, 교사를 보호하지 못하는 관리자. 이 상황에서 단 한 명의 교사라도 실제 징계를 받게 된다면, 교사들은 징계받은 교사에 대한 구명 운동을 펼칠 수밖에 없게 되고, 집회에 참여한 교사와 아닌 교사로 분열되고, 이 운동은 본질을 벗어나 대혼란에 빠질 것이 자명했습니다. 

 이때 처음 좋은교사운동은 모든 회원 선생님에게 금식을 선포했습니다. 금식하며 단 한 명의 선생님도 징계받지 않도록 기도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좋은교사운동에서는 ‘94집회에 참석하는 교사에 대한 교육부의 징계가 정당한가?’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놀랍게도 무려 32만 명이 넘는 국민이 응답을 해주셨습니다. 평소처럼 만든 구글 설문에 너무 많은 분들이 동시에 응답을 해서 제 최신형 맥북이 데이터를 감당하지 못할 것만 같았습니다. 결국 32만 명 수준에서 설문을 닫고,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이는 순식간에 기사화 되었고, 당시 국회 대정부 질의 때 이주호 교육부장관에게 한 국회의원이 해당 기사를 인용해서 교육부장관을 질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교육부는 교사 징계 원칙을 철회하게 됩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을 하나님께서 이뤄주셨습니다. 너무 확대 해석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당시 교육부가 저희 설문을 그대로 인용한 신문사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재소한 것을 보면, 저희의 설문을 얼마나 신경 썼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교육공동체 붕괴를 막기 위해 단 한 명도 징계받지 않게 해달라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와 다름없는 설문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퍼져나가 무려 32만 명이 응답하였고, 그 여론이 대통령실과 교육부를 꼼짝 못 하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좋은교사운동과 함께 일하신다. 저는 이 사실을 너무나 확실하게 느꼈습니다. 모든 정책과 법이 관료들에 의해서, 국회의원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실행되는 것 같지만, 모든 일이 사람이 하는 일 같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고 저는 100번째 비행을 하였습니다. 

 이후 교권 5법은 마련되었지만 현장 교사들의 고통, 아이들의 고통은 여전했습니다.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일들이 오히려 예산과 인력의 투입은 없고,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 교사와 관리자를 서로 단절시키는 방향의 정책들이었습니다. 아무리 기도하고 고민해도 그러한 단절이, 교사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좋은교사운동은 6년 만에 여는 대면 기독교사대회를 앞두고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해야 했습니다. 모른 척 옆으로 치워두고 찬양만 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좋은교사운동은 그 해 2024년 1월 교육공동체 대화모임을 진행하면서,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교육공동체 회복’이고, 회복의 열쇠는 역시나 ‘대화’라고 확신했습니다. 교사, 학생, 학부모 3주체 대화 모임을 하면서 휴직했던 선생님이 다시 학교로 돌아갈 용기를 얻기도 하였고, 교직을 그만둘 고민을 했던 선생님은 대화 모임 이후 계속 학교를 다니기로 결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사대회에서 선생님들께 그냥 ‘대화’하자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 주제를 가지고 몇 날 며칠을 씨름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탔는데, 앞에 한 승객의 가방에 예쁜 말 키링이 대롱대롱 걸려 있었습니다. ‘말이 걸려 있네. 말이 걸려 있어? 어! 말을 걸어?’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말 걸기’ 캠페인입니다.  

 기독교사대회에서 이 캠페인을 제안했을 때 정말 많은 분들이 함께 울고, 호응해 주셨습니다.  주제 강의를 마치고 많은 분들의 인사를 받았습니다. 그중에서도 두 분의 말씀이 계속 마음에 남습니다. 

 주제 강의를 마치고, 백스테이지에 가자마자 무대 스태프로 섬겼던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이미 선생님의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이 느껴져서 저도 눈물이 났습니다. 둘이 껴안고 펑펑 울었습니다. 눈물을 닦고, 강의 시간 초과한 게 미안해서 그 선생님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내가 10분이나 오버했네요.” 선생님이 답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라면 100시간이라도 듣고 싶어요.” 그냥 하는 말이었겠지만 다시 눈물이 났습니다. 

 대회 폐막식을 마치고,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무대를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한 예비교사가 저를 붙들었습니다. “선생님, 저 그만두려고 했는데, 기독교사로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현장에서 다시 만납시다.” 하고 답했습니다. 진심이었습니다. 

 나 같은 막대기가 하나님께 쓰임 받았구나 싶었습니다. 2000년 예비교사 시절 기독교사대회에 참석해서 강의를 듣고 나도 기독교사로, 좋은교사로 살기로 결단했는데, 다시 그런 후배가 나와 주다니! 그의 존재 자체가 우리 사역에 대한 보상이고, 이 여름을 뜨겁게 다 드린 대가가 되었습니다. 

 그 후 2024년 2학기는 “나는 하루 한 명 말 걸기를 선택한다.”는 슬로건으로 말 걸기 캠페인 출범식을 갖고, 운동을 펼치고, 같은 강의를 여기저기서 하고 또 했습니다. 정말 많은 선생님이 자발적으로 캠페인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말 걸기 21일 챌린지에도 동참해 주셨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노조에서 ‘말 걸기 캠페인’을 소개해 달라는 강의 요청까지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은교사운동을 사용하신다! 2024 기독교사대회는 이를 분명히 알 수 있는 대회였습니다. 좋은교사운동이 이 땅에 존재해야 하는구나! 좋은교사운동 이외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단체가 세상에 없구나! 우리가 아니면 아무도 이런 목소리를 내지 않겠구나!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다소 두렵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 소명을 기꺼이 다 감당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럴 만한 사람들인가? 고민하며 2학기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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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저는  200번째 비행을 하였습니다.  

 2025년 5월 신나게 말 걸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데, 제주의 한 중학교 교사가 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은 제2의 서이초 사건으로 불리며 많은 언론이 주목했습니다. 제주에 주요 교원단체들이 내려가서 기자회견도 했었습니다. 저는 제 고향 제주에서 일어난 일이고, 돌아가신 분이 저와 나이도, 성함도 비슷해서 남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제주에 내려가 선생님의 발인에 참석했습니다. 제주도에는 화장장이 한 곳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주 익숙한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낯선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교복 입은 학생들이 너무 많이 와 있었습니다. 휴일인데 교복을 입고 삼삼오오 모여드는 학생들을 보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분향을 마치고 나오며 교복 소매에 눈물을 감추는 학생을 보며 저도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장례식은 학생들이 50대 배 나온 아저씨들이 되어서야 서로 옛날을 추억하며, 웃으며 선생님을 보내드리는 그런 자리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학생들 교복에 눈물이 젖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서이초 사건 2년이 지났는데, 교권 5법이 있고 교육활동보호 종합방안이 있는데, 민원대응 매뉴얼과 시스템이라는 것이 각 교육청마다 학교마다 있는데 왜? 왜?! 또 이런 일이 일어나나! 이전까지는 악성 민원인에 대해 분노했었다면 이제는 시스템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이후 좋은교사운동 제주모임 대표님의 요청으로 제주 사건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인천처럼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요구하기도 하고, 설문을 해서 교사-학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민원 대응 시스템 개선 전담기구를 만들자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주도교육청은 지나칠 정도로 교사단체들의 의견을 무시한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중 국정감사 기간에, 국회의원실을 통해 받은 제주도교육청의 국감 자료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돌아가신 고 현승준 선생님 학교의 교감 선생님이 작성한 사건 경위서가 이상한 것입니다.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주 우연하게 유가족께서 국회의원실을 통해 저에게 연락이 왔고, 통화 중에 경위서가 허위로 작성된 것이고, 실제 녹취와 다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교육청이 그 허위 경위서를 알면서 그대로 국회로 제출한 것이 되는 중대한 일이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진실을 나에게 알게 하시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 자체가 하나님께서 알게 하셨다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두려운 마음도 컸습니다. 제주도는 정말 좁은 사회이고 교육청에는 저를 알고 제가 아는 수많은 선후배가 있습니다. 교육부를 향해서, 국회를 향해서 비판하고 외치는 일은 쉬웠습니다. 그런데 뻔히 내가 알고, 복직하면 또 만나야 하는, 알고 지내는 이들을 향해 비판하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혹시나 내가 이 일을 키워서 괜히 유족들이 더 어려워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들이 더 큰 두려움으로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런 두려움이 꽤 컸던 모양입니다. 이 일 이후 저는 예전에 있었던 공황증상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약은 먹고 있지 않고, 공황증상이 찾아올 때마다 공황에 대처하는 심호흡법을 유튜브에서 보고 따라하고 있습니다. 좀 더 심해지면 병원에 가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진실을 알게 되었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후 진실을 아는 것과 그것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습니다. 국회의원의 입을 빌어 진실이 알려지게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매일 달리기를 할 때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주님, 진실이 밝히 드러나게 하옵소서! 주님, 진실이 반드시 드러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결국, 많은 우여곡절 끝에 진실이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제주도교육청의 진상조사 발표 결과, 학교에서 허위 경위서를 작성한 것은 맞지만 고의성은 없어 보인다며 경징계를 요구했고, 교사가 나이스에 병가 신청을 한 것은 아니라며 망자에게 책임을 전가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아직까지 순직 인정도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이 편지를 작성하는 오늘도 저는 유족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이 시간 가장 고통 받는 유가족 옆에서 힘이 되어 주는 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신 성육신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 희생자가 우리 선생님들 중에 하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제주 고 현승준 선생님 사건의 경우, 중앙에서는 저희 좋은교사운동이 맨 앞에서 이 일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사무실에서는 “현승호 대표는 제주도교육청에 찍혀서 복직하면 이상한 곳에 발령 날 것”이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곤 합니다. 선생님 저는 이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께서 좋은교사운동을 통해 이 나라 교육의 어둠을 밝히고 계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300번째 비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선생님, 이 세상에 좋은교사운동 같은 단체가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선생님, 이 나라에 좋은교사운동 같은 기독교사단체가 계속 유지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이 분노와 복수로 가득할 때 함께 애도하자고 말하는 단체, 
서로 담을 쌓고 선을 넘어오지 못하게 막자고 할 때 먼저 말을 걸자고 하는 단체,
모든 일이 사람이 하는 일 같아도 그 일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믿고 기도로 법과 제도를 바꾸는 단체,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아파하는 자와 함께 아파하며 유가족과 교사의 눈물을 닦아 주려는 단체,
우리의 이익을 상대화하고, 아이들의 신음 소리에 먼저 응답하고자 하는 단체!  
이 세상에 다른 목소리를 내는 그런 단체가 여전히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저희 좋은교사운동의 후원자가 되어 주십시오. 저 역시 같은 마음으로 오늘도 비행기에 몸을 맡깁니다.

 함께 오늘을 걷고, 함께 내일을 열어갈 동역자, 후원자로 선생님을 초대합니다. 제주에 가족을 놔두고 떠나는 저의 300번째 비행이 외롭지 않도록 함께해 주십시오! 저희 역시 선생님의 교실이 외롭지 않도록, 두렵지 않도록, 옆에서 함께하겠습니다. 
< 신규 후원 기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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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한성준 대표님이 위와 같은 신규 후원 기대표를 제시하시면서 첫 번째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후원에 동참해 주고 계십니다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이 편지를 보시고, 나머지 빈자리를 선생님께서 채워주신다면, 선생님은 한국 교육을 새롭게 하는 일에 동참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을 이 멋진 일에 초대합니다. 


2026년 1월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 현승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