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교육청이 추진 중인 이른바 ‘경기형 과학고 설립 계획’은 교육의 공공성과 형평성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중대한 정책적 오류이다. ‘과학기술 인재 양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조기 입시 경쟁과 사교육 확대, 공교육 내 서열화 구조의 재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역특화형 과학고’라는 이름은 진로 다양화나 지역 균형 발전의 대안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특수목적고 체제의 부활이자 지역 간 경쟁을 부추기는 또 하나의 서열화 전략일 뿐이다. 특히 일부 지자체와 정치권은 이 정책을 지역 개발과 표심 결집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교육정책이 정치적 성과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과학 인재 양성은 소수 특권층을 위한 학교 설립이 아니라, 모든 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공교육 기반의 ‘과학 교육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에 우리는 ‘경기형 과학고’ 설립 계획이 정치적·정책적·윤리적으로 모두 실패한 기획임을 분명히 밝히며, 그 전면 철회를 강력히 요구한다. 아울러 경기도의 모든 학생에게 성장과 기회의 평등을 보장할 수 있는 대안적 공교육 모델의 즉각적인 수립을 촉구한다.
‘경기형 과학고’는 조기 사교육을 유발하고 학교의 ‘입시 기관화’를 가속화한다.
아직 과학고가 개교하기도 전에, 사교육 시장은 이미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과학고 대비 국영수 선행반’, ‘중3 대상 내신·경시 컨설팅’, ‘과학고 입시 설명회’ 등이 빠르게 확산되며, 초등학생 단계부터 과학고 진학을 목표로 한 사교육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과학 인재 양성’이라는 정책의 본래 취지를 퇴색시키고, 탐구 중심 교육보다는 내신과 수행평가에 최적화된 경쟁 체제로 학생과 교사를 몰아세운다. 결과적으로 경기도 내 모든 학생과 학부모가 조기 입시 경쟁과 사교육 압력에 노출되며, 이는 공교육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고 교육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우려가 크다.
소수를 위한 고비용 특권 교육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공공 재정의 왜곡이다.
경기형 과학고 설립에는 개교 준비, 인프라 확충, 교원 배치, 기숙사 건립 등 막대한 세금이 투입된다. 지역별로 수백억 원에서 최대 1천억 원 이상이 소요될 수 있으며, 이는 사실상 일부 상위권 학생을 위한 전용 시스템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처럼 막대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과학고가 본래 취지인 이공계 인재 양성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많은 과학고 학생들이 의대에 진학함에 따라, 과학고가 공공 재정으로 운영되는 ‘의대 진학 대비반’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될 정도이다.
이는 외고·자사고가 ‘입시 기관화’되어 폐지 논의에 이르렀던 과거와 유사한 양상이다. 특목고에 대한 과도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공공성과 책무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그 결과 모든 도민의 세금이 소수의 입시 특혜에 집중되는 구조가 지속되고 있으며, 정작 일반고의 ‘과학중점 교육과정 확대’ 등 공교육 기반 교육 역량 강화는 도외시되는 실정이다.
지역 특화 명분으로 포장된 서열화는 교육 불평등을 구조화할 뿐이다.
‘부천은 로봇’, ‘성남은 IT’, ‘이천은 반도체’, ‘시흥은 생명과학’이라는 식의 지역 특화 구분은 산업 연계라기보다 입시 전략 차별화를 위한 상징적 구도에 가깝다. 해당 분야는 이미 ‘수원하이텍고’, ‘성남테크노과학고’, ‘용인반도체마이스터고(예정)’, ‘수원농생명과학고’ 등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 체제를 통해 충분히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학고를 추가로 신설하는 것은 명분 없는 중복 투자이자, 고등학교 체제 내 또 다른 서열을 만드는 정책에 불과하다.
더욱이 이러한 계획은 고교학점제가 지향하는 ‘교육과정 다양성 확보’, ‘진로에 따른 과목 선택권 확대’, ‘학습자의 주체성 존중’이라는 철학과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여기에 ‘지역 우선 선발’ 주장까지 더해지면, 교육의 공정성과 보편적 가치마저 훼손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학교 간 위계 심화와 지역 간 교육 격차의 고착화로 이어질 것이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강력히 요구한다.
하나, 경기도교육청은 경기형 과학고 설립 계획을 즉각 철회하라.
공교육 철학과 형평성에 어긋나는 특권학교 설립은 중단되어야 한다. 도민과 학생을 더 이상 정책 실험 대상으로 삼지 말라.
둘, 모든 학생을 위한 과학 교육 기반을 강화하라.
과학중점학교 확대, 지역 융합교육과정 운영, 고교학점제 내실화를 위한 거버넌스 구축 등 보편적 과학교육에 재정을 우선 투입하라.
셋, 과학 인재 양성은 ‘협력’과 ‘공공성’에 기반해야 한다.
과학고 확대는 경쟁적 입시 과열과 공교육에 대한 불신만 초래할 뿐이다. 지금 멈추고, 모두를 위한 책임 교육의 방향으로 선회하라.
교육은 소수가 아닌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하며, 과학 인재 양성 또한 공정하고 포용적인 기반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경기형 과학고’는 미래를 향한 교육개혁이 아니라, 과거로 회귀하는 서열화의 재구성일 뿐이다.
우리는 경기도 교육이 더 이상 정치와 특권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끝까지 감시하고, 모든 학생을 위한 책임 교육의 길이 열릴 때까지 행동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