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교사는 정치적으로 침묵할 것을 강요받아 왔습니다. 그 뿌리는 1961년 군사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권이 교육을 국가 통제의 수단으로 삼은 데 있습니다. 이 시기 도입된 교련과 학도호국단, 그리고 정권의 이념 주입은 교사의 정치적 권리를 박탈하는 제도적 근거가 되었고, 그 유산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가공무원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등은 교사로 하여금 정당에 가입하지 못하고, 정치적 표현을 하지 못하며, 정치후원금도 낼 수 없고, 선거에 출마조차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교사는 정치적 존재로 살아갈 수 없으며,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권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교사와 공무원의 정당 가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습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이미 수 차례 한국 정부에 교원·공무원의 정치기본권 보장을 권고했으며, 이는 ILO 제87호(결사의 자유), 제98호(단결권), 제111호(차별금지), 제151호(공공부문 노동자 권리) 등의 협약에서 명확히 보장된 권리입니다. 유럽 주요국과 북미, 아시아 다수 국가에서 교사의 정치참여는 기본권으로 보장되고 있으며, 캐나다는 심지어 선거운동을 위한 휴가제도까지 마련하고 있습니다. 반면 대한민국의 교사는 SNS에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거나 정치 관련 뉴스를 공유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까지 받고 있습니다.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박탈한 결과, 교육정책 결정 과정에서 교사는 철저히 배제되었고, 그 피해는 교육의 질 저하와 정책 신뢰도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교육전문가인 교사가 빠진 정책은 현실과 동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한 부담은 오롯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민주시민을 양성해야 할 교사가 스스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구조는 교육의 본질을 훼손합니다.
정치적 중립은 교사의 본분을 지키기 위한 원칙일 수는 있으나, 그것이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침해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정치적 중립은 학교 안, 교육활동 중에만 적용되어야 하며, 학교 밖에서는 교사도 평범한 시민으로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원칙은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평등권이라는 헌법 가치에 부합하며, 교육을 공공성 위에 세우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하나. 교사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
하나. 정치후원금 기부의 자유를 허용하라.
하나. 정당 가입을 허용하라.
하나. 교사의 피선거권을 인정하라.
우리는 정치기본권이 보장된 교육 현장을 만들고자 합니다. 이는 단지 교사의 권리를 회복하는 일이 아니라, 교육의 민주성을 복원하고, 교육정책이 국민의 삶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전제 조건입니다. 대통령 후보들은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을 명확히 공약으로 제시하고, 당선 즉시 관련 법률의 전면 개정을 추진해야 합니다.
교사는 정치적 침묵의 대상이 아니라, 교육과 사회를 변화시킬 주체입니다. 교사의 정치기본권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