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지난 26일 학생·학부모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공교육을 황폐화시키는 사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된 ‘킬러문항’ 사태는 “킬러문항을 핀셋으로 제거”해 해결하겠다 밝혔습니다. 이를 위해 공정수능평가 자문위원회와 공정수능 출제 검증위원회를 신설한다고 하였습니다.
과도한 사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교육부 차원의 대책은 꼭 필요한 일이며, 과도한 선별을 위한 킬렁문항 배제 또한 필요한 일입니다. 문제는 핀셋으로 집어내듯 킬러문항을 제거한다 해도 공교육의 교육력이 높아지거나 학생들의 배움의 질이 좋아지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킬러문항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고, 특히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소수의 학생들은 더 촘촘하게 한 줄로 세울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육부는 21일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하며 자사고-외고-국제고는 존치하고, 내신 상대평가 9등급 제도도 그대로 유지한다고 밝혔습니다.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고, 학업성취도가 높은 학생은 더 촘촘히 줄 세우는 근본적 구조는 어느 것 하나 바꾸지 않았는데 사교육비 문제가 해소될 리는 만무합니다.
킬러문항을 핀셋으로 뽑아낸 자리에는 또 다른 킬러문항에 준하는 문제들이 들어올 것입니다. 국어에서 킬러문항이 사라졌다면 다른 과목에서 나타날 것이며, 수능에서 뽑아내면 내신에서, 내신에서 뽑아내면 대학별 고사에서 나타날 것입니다. 상대평가 체제에 근거한 견고한 줄 세우기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킬러문항과 사교육비 문제는 영역과 수준만 달리해서 계속해서 나타날 것입니다.
사교육비를 경감하기 위해서는 한 줄로 촘촘하게 세우는 과도한 경쟁교육을 완화해야 하고,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수능과 내신의 상대평가 체제를 절대평가 체제로 바꾸어야 합니다. 또한 고등학교의 서열화 문제와 대학의 서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육부는 자사고-외고-국제고 존치와 고1 공통과목 상대평가 9등급 유지를 오히려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사교육 유발과 학교 교육력 저하의 근본 원인을 도외시하며 킬러문항 몇 문제 배제한다고 해서 사교육 문제가 잡힐 리 없습니다.
그밖에 자사고-외고-국제고의 후기 학생 선발 및 자기주도학습전형 유지, 튜터링, 방과후 보충지도, EBS 연계 강화, 늘봄학교 확대, 체육·예술 프로그램 확대 등은 새로운 것 없는 정책들의 반복일 뿐입니다. 이미 사교육 경감 효과가 크지 않았던 정책을 마치 새로운 대안인 것처럼 제시하는 것은 교육주체들을 기만하는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특히 돌봄 사교육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늘봄학교와 초1 에듀케어를 확대하고, 체육·예술 프로그램도 확대하겠다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좋은교사운동이 늘봄학교 시범운영 2개월 결과를 정보공개청구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시범운영 5개 시도교육청 중에 돌봄전담사 추가 지원 인력은 0명이었습니다. 운영 인력 대부분이 한시적, 비정규직 인력이거나 자원봉사자를 활용한 운영이었습니다.
늘봄학교 운영은 일례에 불과하며,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고 학교 교육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전문인력 채용과 행·재정적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 사교육 경감 대책에는 단위학교 교육력 제고를 위한 인력 지원은 어느 곳에도 없었습니다. ‘대학서열 체제, 고교서열 체제, 이를 뒷받침하는 한 줄 세우기 상대평가’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 놓고, 학교에 모든 책임을 지우는 방식으로는 사교육비가 줄 수도, 학교 교육력이 제고될 수도 없습니다. 더욱이 단위학교에 대한 인력과 행·재정 지원 없이 이 모든 대책을 단위학교에 이뤄내라 하는 것은 과도한 처사입니다.
과도한 사교육 문제는 교육부가 이번 발표에서도 밝힌 바처럼 학교 교육을 황폐화시키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병폐입니다. 그렇다면 교육부는 사교육을 유발하고 학교를 경쟁교육으로 몰아넣는 근본 원인인 고교서열화 문제와 상대평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내놓았어야 합니다. 본질을 빗겨 간 대책으로 사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