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와 더불어 스포츠, 연예계 유명인의 학교폭력 문제가 불거지면서 학교폭력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사회 지도층 인사가 변호사를 동원하여 학교폭력에 대응하는 과정을 보며 일반적 국민 눈높이에서는 공분이 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대통령은 미국식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언급하였으며,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국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가해 학생의 학생부 학교폭력 징계 기록 기간 연장’, ‘학교폭력 징계 결과의 대학 입시 반영 방안’ 등을 학교폭력 근절 방안으로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좋은교사운동은 학교폭력 근절을 위해 교육당국이 엄벌주의 방식의 징계 강화 방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합니다. 특히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교육적 지원과 안전망이 부족한 상황에서 가해 학생을 학교 밖으로 단번에 내보내는 것은 결코 대책이 될 수 없습니다. 퇴출된 학교 밖 청소년들에 의해 발생하는 각종 문제는 고스란히 국민이 짊어질 사회적 비용으로 부메랑이 되어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또한 학교폭력 징계 기록 보존 기간을 단순히 연장한다고 해서 학교폭력 문제가 근절될 수 없습니다. 역설적으로 공분을 샀던 정순신 변호사의 재판을 통한 학폭처리 지연은 징계를 기록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학교가 학교폭력을 둘러싼 법적 다툼의 장이 된 것은 학교폭력 조치 사항을 학생부에 기록하면서부터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보존 기간이 연장되면 학교 내 법적 다툼은 커지고 교육적 해결 여지는 더욱 줄어들 것입니다. 더욱이 학교폭력 징계 사항을 대학 정시까지 연계한다면 학교폭력의 교육적 해법 모색은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처벌 중심의 학교폭력 대책은 피해자의 회복보다 가해자의 처벌이 늘 우선입니다. 그렇다 보니 가해자 처벌이 결정되면 학교폭력 사안도 종료됩니다. 처벌 중심의 학교폭력 처리 과정에서는 학교폭력 사안이 피해자의 온전한 피해 회복, 가해자의 진실된 반성과 책임, 학교 공동체의 회복 등은 이뤄지지 않은 채 단순히 하나의 사건으로 다뤄지고 맙니다.
지금까지 학교폭력이 사회적으로 불거질 때마다 교육당국은 늘 엄벌주의를 내세웠습니다. 가해자 처벌 강화 방식이 국민적 공분을 잠재우는 가장 빠르고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 우리 사회의 학교폭력 해결 역량은 늘 제자리입니다.
학교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학교가 갈등에 대해 엄벌주의 방식의 징계를 강화하는 방식이 아닌 교육주체 간의 신뢰 회복과 상호 존중을 통한 공동체 통합의 방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지원 방식이 뒤따라야 합니다.
좋은교사운동은 2011년부터 피해자의 회복과 교육공동체의 재건을 목표로 하는 회복적 생활교육을 교육 현장에 안착시키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그 결과 학교 현장에는 회복적 생활교육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높아졌고, 2023년 전국 시도교육청에서는 관계회복 현장지원단을 설치, 운영하고 있습니다. 회복적 생활교육 실천가들이 학교 현장에 갈등 중재자로 들어가 갈등을 배움과 성장의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회복적 생활교육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한 교사는 부족하며, 교육청 차원에서 지원하는 관계회복 현장지원단은 시도별 편차가 심하고 현장의 요구에 비해 지원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학교마다 관계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지만, 단위 학교의 역량에 따라 관계회복 프로그램의 질도 천차만별입니다.
학교가 갈등을 교육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회복적 실천 역량 강화와 회복적 생활교육 담당 교사 배치, 학교 관계회복 프로그램 질 제고, 학교 밖 갈등중재 전문가와 학교 연결 강화 등의 교육부 차원의 지원 정책이 필요합니다.
좋은교사운동은 학교폭력 및 학교 내 갈등 해결을 위해 교육공동체회복위원회를 제안합니다. 오늘의 학교폭력 문제는 복합적인데 학교의 진단과 처방은 분절적입니다. 그러기에 문제 해결도 안 되고, 학교는 교육공동체로서의 기능만 약화되고 있습니다. 학교든 교육청이든 학교 내 갈등의 통합적 문제에 대해 분절식 방법으로 접근해서는 학생의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교육공동체회복위원회는 학교생활교육위원회(구. 선도위원회), 학교폭력전담기구협의회, 학교교권보호위원회를 통합한 위원회로 학내 갈등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기구입니다. 학교폭력 및 학교 내 갈등에 대한 단위 학교의 교육적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단위 학교 공동체 차원에서 갈등을 교육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논의의 장이 필요합니다. 이는 분리된 각각의 위원회보다 ‘교육공동체회복위원회’라는 통합된 위원회를 통해 접근해야 단위 학교들의 교육적 기능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통합된 위원회 안에서 피해자의 회복과 가해자의 진심 어린 반성과 책임, 학교 공동체의 책임과 지원 방안 등이 이야기되어야 합니다.
교육당국은 이달 말 학교폭력 근절 대책을 발표하겠다 하였습니다. 교육당국은 징계 기록 보존 기한 연장, 그 기록의 대입 반영과 같은 엄벌주의 방식 조치로 국민적 공분을 잠시 잠재우는 보여주기식 대책만 발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교육주체 간의 신뢰를 회복하고, 상호 존중을 통해 학교가 교육공동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방향의 대안들을 발표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학교폭력의 주원인이 되는 사회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대책도 이번 대책에 포함시켜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