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교사운동은 스승의날을 앞두고 학교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해 우리 교육계가 신뢰와 협력의 방식이 아닌 분열과 단절의 방식으로 서로를 악마화하는 오늘의 교육 현장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합니다. 특히 교권보호를 명분으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는 일부 지방의회의 결정에 대해 우려를 표합니다.
교권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것은 학생인권조례 때문이 아닙니다. 교권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책임은 교육당국에 있습니다. 대한민국 교사는 촘촘한 상대평가 중심의 과도한 입시 경쟁 체제에서 교사로서 충분한 평가권과 수업권을 보장받고 있지 못합니다. 가령, 고3 교실에서는 수업은 하되 교육과정과는 무관한 EBS 문제 풀이 수업을 해야 하고, 평가 문항을 출제하되 변별을 위한 초고난도 문항들을 출제해야만 합니다. 입시 학원과 별 다를 바 없는 학교는 이미 교육의 공적 기능을 잃은 지 오래고, 교사는 의미 없는 가르침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렇듯 대한민국 교사는 가르치는 자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권한인 수업과 평가에 대한 교육 권한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육에 대한 권한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학교는 그저 교육 서비스 기관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교사들이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형국에서 교사들의 인격 침해는 심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당국은 교사들의 인격과 교육권을 침해하는 과도한 민원에 대해 교사 개인이 아닌 기관 차원의 대응을 하겠노라 발표했지만, 교사들은 여전히 민원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습니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보호 5법이 만들어졌으나, 교육당국의 인력과 예산 지원은 턱없이 부족해 교사들은 달라진 것 없는 교실에서 과도한 책임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당국은 물리적 제지와 분리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정서행동위기학생들에 대해서는 그 모든 책임을 학교에 떠맡기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교권보호 미비에 대한 책임을 학생인권조례로 돌리는 것은 교육당국의 책임 회피에 불과합니다. 교권보호가 안 되는 이유는 학생인권조례가 아닌, 교사의 수업권과 평가권을 제대로 보장해 주지 못하는 과도한 경쟁교육 입시체제와 그 체제를 방치하는 교육당국에 있습니다. 또한 서이초 사건을 겪고도 현장 교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대로 된 교권보호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는 교육당국의 책임이 큽니다. 교권보호를 명분으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잘못 짚은 주장에 불과합니다.
학생인권조례와 교권보호조례를 폐지하고 학교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을 균형 있게 담은 조례를 제정하려는 시도 또한 학교 구성원의 분열만 가져올 뿐입니다. 말은 “균형 있게”라 표현하였으나 학생, 학부모, 교사의 권리와 책임을 기계적으로 나누어 기술했다고 하여 학교 구성원의 인권이 향상될 리 없습니다. 기존의 조례에서 보장받았던 권리와 책임이 모두 축소되는 방안으로는 학교 구성원 누구도 새롭게 제정하려는 조례에 뜻을 함께할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교권보호의 책임이 학생인권조례에 있지 않는데, 새로운 형태의 조례를 제정한다 해서 교권이 보호될 리 만무하며, 학교의 인권 보장 상황이 나아질 리 없습니다.
이는 학생 인권 보장을 위한 특별법 제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나, 그렇다고 조례 폐지를 무력화하기 위해 특별법의 형태로 학생 인권 보장법을 제정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에 이르기 어려운 방식입니다. 정치적 힘을 이용해 일방적으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거나, 그 폐지를 무력화하기 위해 특별법을 만드는 일 모두 학생, 학부모, 교사를 협력과 신뢰의 관계로 이끌기보다는 분열과 단절로 이끌고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신뢰와 협력은 충분한 상호 이해에서, 상호 이해는 학교 구성원 사이의 대화에서 시작합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충분한 대화와 사회적 숙의의 과정이 조례와 법률 제정에 선행되어야 합니다. 대화와 사회적 숙의 과정 없이 졸속으로 제정된 조례와 법률은 생활 세계를 과도하게 법화할 것이며, 이는 학교의 자율성과 공동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입니다. 교육계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대화와 사회적 숙의의 과정을 여는 것입니다. 학생인권조례를 가운데 두고 양편으로 갈라서서 서로를 악마화하는 일은 교육 주체들 사이의 불신의 골만 깊게 만들 뿐입니다.
좋은교사운동은 지난 1월부터 5월에 이르기까지 학부모 단체, 청소년 인권단체, 회복적 정의 단체 등과 협력하여 ‘교육공동체 회복을 위한 대화모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대화모임에 참여한 학생, 학부모, 교사, 시민은 하나같이 우리 교육의 회복을 위해 존중, 신뢰, 협력, 소통의 가치가 필요하다 입을 모았습니다. 또한 이를 위한 첫걸음으로 교육 3주체의 상호 이해를 위한 대화에 참여하였습니다. 대화모임에 참여한 교육 3주체는 ‘대화는 서로의 고통의 이해하고, 서로를 대상이 아닌 존재로 만나게 하는 힘이 있음’을 모두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교육계에 절실한 것은 서로를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존재로 만나게 하는 일입니다. 이에 좋은교사운동은 조례나 법률 제정에 앞서 학교 구성원의 신뢰와 협력을 이루기 위한 방식으로 대화모임과 사회적 숙의 과정을 교육당국이 열어 갈 것을 제안합니다. 신뢰와 협력의 가치 위에 만들어지는 사회적 약속이야말로 학교를 함께 성장하는 기쁨의 교육공동체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