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6일, 국가교육위원회(이하 국교위)는 교육부의 국가교육과정 수립‧변경 요청을 수용하여 국가교육과정 수립·변경을 추진하기로 의결하였습니다. 초‧중학교 단계의 신체활동 강화를 위해 초등학교 1, 2학년의 즐거운 생활에서 체육 교과를 별도 교과로 독립시키고, 중학교 스포츠클럽 운영 시간을 102시간에서 136시간으로 늘려서 운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적용하고 두 달이 채 안 된 시점에서 국가교육과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국교위 스스로 파기한 결정입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사회적 합의의 결과로 탄생되었고, 국가교육위원회가 의결하여 발표한 첫 번째 교육과정입니다.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였고, 수많은 시간의 논의를 거쳤으며,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하여 최초로 사회적 합의를 통한 교육과정 개정에 이른 결과입니다. 교육과정 개정 결론에 대한 각계각층의 불만이 많았지만, 법 절차에 따른 결정이 갖는 민주적 정당성에 따라 각 주체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적용 두 달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이에 불복하고 재논의를 주장한 개정 요청을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한 것은 법과 민주적 절차에 따라 확보한 민주적 정당성을 국교위가 스스로 추락시킨 결과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국교위 스스로 민주적 합의를 무너뜨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으며, 앞으로 있을 국교위의 수많은 결정이 국민적 신뢰를 받기 어려운 상황을 스스로 초래한 것입니다.
바른 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등 통합교과 형태로 초등학교 1, 2학년 교육과정을 운영하여 온 것은 지난 4차 교육과정 이후 견지해 온 초등 교육과정 운영의 핵심 사항입니다. 이후 수차례 있었던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서 체육 교과, 음악 교과, 미술 교과 등은 보다 체계적인 교육을 위해 독립 교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쳐왔습니다. 그러나 초등학생들의 삶을 중심에 둔 통합교육의 필요성과 초등 1, 2학년의 학습 부담을 고려하여 교과 독립을 불허해 온 것이 지금까지의 초등학교 1, 2학년 교육과정 개정의 역사였습니다. 2022 개정 교육과정 과정에서도 체육·예술 교과의 독립 교과 운영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나, 수많은 논의 끝에 통합교과의 틀을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을 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회적 합의를 깨고 체육 교과를 독립교과로 만든다면, 음악, 미술 교과의 독립 요구에는 무엇이라 말할 것이며, 국어 교육, 영어 교육 요구에는 또한 무엇이라 대답할 것입니까? 결국 통합교과 형태의 초등 교육과정의 틀은 무너지고 초등학교 1, 2학년 어린 학생들은 엄청난 학습 부담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중학교 스포츠클럽도 마찬가지입니다. 2015 교육과정에서 136시간으로 진행된 중학교 스포츠클럽은 학생들의 신체활동 증대를 위해 필요하였지만, 이로 인해 중학교 교육과정 운영이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학교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별다른 사회적 논의 없이 갑작스럽게 학교에 도입된 학교스포츠클럽을 운영하느라 창의적체험활동에서 비스포츠 동아리 활동이 1시간짜리 시간 때우기식 동아리로 대부분 전락하였으며, 고정된 과목이 많아지면서 교육과정 시간표 운영은 경직되었습니다. 스포츠 활동 공간은 턱없이 부족하고, 스포츠 강사 채용도 턱없이 부족하여 일반 교과 교사들이 스포츠클럽을 맡아 운영하는 등 학교스포츠클럽의 부실 운영 문제도 심각하였습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스포츠클럽 시수를 102시간으로 줄여 학기당 1시간씩만 운영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중학교에서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시행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것이 부족하다 하여 갑자기 34시간을 다시 늘리고자 하는 데는 체육학회나 체육협회 등 일부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평가하는 과정도 없이 시행도 전에 이루어진 개정 요청은 어렵게 만들어진 사회적 합의에 대한 엄연한 불복입니다. 그리고 교육부와 국교위가 그 불복을 수용해 준 꼴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국가교육위원회의 결정 사항은 언제든지 불복 가능하다는 의미인지 국가교육위원회는 답해야 할 것입니다.
학생들의 신체활동을 권장하고 확대하는 일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신체활동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모든 학생의 건강한 발달을 도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학교 안에는 신체활동 교육만큼이나 중요한 교육이 너무 많습니다. 예술 교육도 중요하고, 언어, 수학, 사회, 과학 등 교과 교육도 중요합니다. 모든 것이 다 필요하지만, 그것을 초등학교 1, 2학년 학생들에게 모두 가르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고, 가르칠 때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 결정의 결과가 현재의 2022 개정 교육과정입니다. 만일 개정이 필요하다면, 시행 결과를 토대로 해서 어떤 성취가 있고,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평가한 뒤, 평가 결과를 통해 다시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렇게 시행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결정 사항을 번복하는 논의는 기존의 결정 과정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입니다.
초‧중학교 신체활동 증대를 위한 교육과정 개정을 즉시 멈추고, 운영 결과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와 연구를 통해 신중하게 진행할 것을 요청합니다.
체육 교과 독립으로 인해 초등의 통합교육의 틀이 깨어질 때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 초등학교 1, 2학년의 체육활동을 전문적으로 전담할 수 있는 교원 증대 문제, 학교 시설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중학교 스포츠클럽 문제도 현재 스포츠클럽의 파행 운영의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시간만 늘리는 것은 교육과정 운영의 파행만 키울 뿐입니다. 스포츠클럽 운영을 위한 인적 지원 계획, 시설 확충 계획 등도 함께 논의되어야 합니다.
학교의 주당 시간표는 31~32시간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한쪽을 늘리면 다른 무엇인가는 줄여야 합니다. 현 단계에서 교육과정 개정은 학교에 혼란만 초래할 뿐입니다. 아울러 국가교육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만 떨어뜨릴 것입니다. 어렵게 만들어진 국가 교육과정을 1~2년이라도 시행한 뒤에 운영 결과에 대한 평가와 연구 과정을 통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학교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보다 나은 국가교육과정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