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지난달 13일 자사고·외고·국제고 존치를 위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며 오는 11월 22일까지 의견을 제출해 달라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요청은 국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2025년 일반고 전환이 예정되어 있던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형식적 요청일 뿐입니다. 이미 교육부는 지난 6월 자사고·외고·국제고 존치를 공교육 경제력 제고 방안으로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에서도 이들 학교 존치를 전제한 고교 전 학년 내신 상대평가 병기 조치를 예고했기 때문입니다.
좋은교사운동은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존치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정착 및 안정적 운영을 가로막고, 미래교육을 위해 추진되던 고교학점제를 무력화시키는 파국적 결말로 이어질 것임을 분명히 경고하며, 이를 즉시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청합니다.
얼마 전 교육부는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에서 고교 내신의 전 학년 5등급 상대평가 병기를 예고하였습니다.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교육부의 이 결정에 대해 고교학점제 실현이 미래교육의 필수 과제라며 밀어붙이던 교육부의 정책 기조와 배치되는 결정이라 평가했습니다. 학교 현장의 많은 교사들이 고교학점제를 하려면 고등학교 내신 평가를 절대평가 형태의 완전한 성취평가제 실현이 필수 과제라 요청해 왔고, 이를 모르지 않는 교육부임에도 이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자사고·외고·국제고 등의 특권학교를 존치시켜야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권학교를 그대로 둔 채 고교 내신 절대평가를 추진할 경우, 특권학교로의 학생 쏠림 현상을 막기 어렵고, 이는 일반계고의 황폐화로 직결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고교학점제를 완성하려면 내신 절대평가를 시행해야 하고, 내신 절대평가를 하려면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해야 합니다. 따라서 자사고·외고·국제고 존치와 고교학점제의 성공은 지금 시점의 대한민국 교육에서는 양립할 수 없습니다.
자사고·외고·국제고 존치를 위한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교육부는 10월 17일 국가교육위원회에 2022 개정 교육과정 개정 요청안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초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을 전제로 만들어진 2022 개정 교육과정 안에는 외고에서 선택할 수 있는 외국어 계열 선택과목과 국제 계열 선택과목을 별도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교육부 방침대로 외고‧국제고가 존치될 경우, 이 학교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전공 관련 선택 과목군 계열이 없게 되어 교육과정 운영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되는 것입니다.
이는 교육부의 특권학교 존치 방침이 2022 교육과정 개정 취지에 어긋나는 것임을 교육부 스스로 인정한 꼴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는 교육과정 개정 추진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국가교육위원회를 교육부의 하수인으로 전락시킨 조치이기도 합니다. 교육과정에 대한 고려도 없이 막무가내로 특권학교의 존치 방침을 정하고 추진하다가 이제서야 국가교육위원회에 그 뒤치다꺼리를 요청한 것입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본격적인 시행도 전에 교육과정 개정의 취지를 스스로 부정하며 교육을 파행시키고 있는 교육부는 교육의 3주체인 학생과 학부모, 교사, 그리고 국민들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해야 할 것입니다.
교육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미래교육 대비를 부르짖으며 AI와 에듀테크 활용 교육을 학교 현장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교육의 당사자인 초등학생, 중학생들은 지금도 학원가를 전전하며 학원 숙제를 학교 수업 시간에 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입니다. 초등학생이 중학교 수학 문제를 풀고 있고, 중학생이 고등학교 수학을 선행학습하면서 학교 공부에 대한 흥미는 잃은 지 오래입니다. 과도한 사교육과 선행학습에 찌들어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우기 위한 학교의 그 어떤 교육활동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는 학생들에게 AI와 에듀테크를 활용한 교육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무섭도록 빠르게 변하고 있는 정보 기술의 홍수 속에서 다섯 개 중에 정답 하나를 찾는 것에 몰두하게 하는 학습을 강요하는 교육 시스템은 그 자체로 학생들의 미래를 닫아 버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과도한 사교육과 선행학습의 정점에 영재고-과학고-자사고·외고·국제고로 이어지는 고교 서열 체제가 있다는 것은 이제 대한민국 누구라도 다 아는 일입니다.
교육부는 이에 더해 자사고에 요구되어 왔던 사회통합전형 미충원 인원의 50%도 일반전형으로 선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안을 시행령 개정안에 담았습니다. 또한 이들 학교의 존치 이유를 “지역교육 활성화를 통한 정주 여건의 개선”이라 밝혔지만, 전국 단위 학생을 모집하는 자사고의 20% 지역 선발 의무화가 얼마나 지역교육 활성화와 정주 여건 개선을 가져올지 의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일반고로 모두 전환된 자율형 공립고의 부활도 포함시켰습니다. 자사고를 위한 개정안은 이미 시대적 생명을 다하고 소멸될 위기에 있는 자사고에 심폐소생술까지 해가며 자사고를 살리기 위한 조치이며, 자공고 부활은 고교 서열 체제를 더욱 촘촘하게 만들어 학생들을 초등학교에서부터 무한 경쟁의 사슬 속으로 담겠다는 조치일 뿐입니다. 촘촘한 고교 서열 체제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학생들은 영유아 시기부터 영어 유치원을 시작으로 국제중, 영재고-과학고-자사고·외고·국제고로 이어지는 과도한 사교육 시장의 먹잇감으로, 경쟁교육 희생양으로 전락하게 될 뿐입니다.
지금도 이미 수많은 학생들이 선별된 집단 속에 들어가기 위한 악순환의 늪에서 배움의 기쁨도, 자아를 찾아가는 시간도 모두 빼앗기고 있습니다. 국가 교육의 책무는 미래 사회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쁨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존치에 앞장서면서 미래교육을 부르짖는 교육부는 양두구육 그 자체입니다. 이주호 교육부장관이 금과옥조처럼 말하는 학교 다양화는 인재 양성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대학 입시를 위한 전문학교를 만드는 정책이며, 고교 서열화라는 괴물만 낳고 실패한 정책입니다. 이주호 장관이 말했던 다양한 학교는 없습니다. 그저 대학 입시에 최적화된 입시 전문학교만 남았을 뿐입니다. 교육부는 지금 소수의 특권학교를 살리기 위해 미래교육을 포기하는 중입니다. 지금이라도 미래교육을 살리고 싶다면 교육부는 즉시 교육개혁의 시간표를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2025학년도 고교학점제 실현과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혁은 2025학년도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이라는 산을 넘고, 모든 교육주체들이 한 마음으로 땀을 흘려야 그 성공의 희망을 겨우 볼 수 있는 매우 어렵고도 어려운 과제입니다. 이에 좋은교사운동은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하나, 교육부는 지금 즉시 자사고·외고·국제고 존치를 위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즉각 폐기하고, 2025학년도로 예정된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을 예정대로 추진하십시오.
하나, 2022 개정 교육과정 시행도 전에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위한 교육과정 개정 요청서를 즉각 철회하십시오.
하나,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시행도 전에 파행의 길로 몰고 간 교육부장관은 국민들 앞에 사과하고 물러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