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서울시교육청의 국제중학교 추첨선발 방안은 근본적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다
서울시 교육청의 국제중학교 추첨 선발 방안은
근본적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다
▶ 전원 추첨 선발은 부유층의 기회를 넓혀 주는 것
▶ 사회배려대상자의 학비를 교육청이 부담하는 것은 국제중학교에 대한 특혜
▶ 학비 부담을 학부모나 재단에 의존하는 것은 공교육 원칙에 어긋나는 것
▶ 일부 계층을 위한 학교가 아니라 보편적 학교로 원위치 시키는 것이 해법
서울시 교육청은 영훈 국제중학교 입학 비리 문제와 관련하여 추첨 선발이라는 방안을 내 놓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비리가 드러나고 사회적 여론이 악화되자 나름의 고육지책을 내 놓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문제에 대한 해결은 될 수 있겠지만 보다 더 큰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도록 만드는 조치로 근원적 해법을 외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제중학교는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한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 하나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경제적으로 높은 학비를 감당할 수 있는 배경을 지닌 학생들이라는 것이다. 즉 성적과 돈의 교집합에 해당하는 학생들을 선발하는 구조인 것이다.
이번에 교육청에서 제시한 방안은 성적 부분의 비리 요인을 제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관적 평가 부분을 없애고 추첨으로 할 경우 성적을 위조한다든지 하는 방법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하여도 초등학교 단계에서 생길 수 있는 비리 요인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쨌든 중학교 자체적으로 발생하는 비리 요인은 축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2015학년도부터는 아예 전원을 추첨 선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이는 성적 요인을 제거하고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겠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사실상 국제중학교는 고소득층(혹은 높은 학비를 감당할 의지와 능력을 지난 대상)에게 더 넓은 문호를 여는 셈이다. 기존의 성적으로 제한 받았던 입학의 벽이 사라졌기 때문에 가능성이 더 넓어진 것이다. 물론 성적 우수학생을 선발한다는 효과를 제거한 상태에서 국제중이 현재와 같은 우월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여전히 귀족학교로서의 후광 효과는 지속될 수 있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사회통합전형의 전망은 어떻게 될 것인가? 폐지될 수도 있고, 유지될 수도 있을 것이다. 둘 다 문제다. 폐지된다면 그야말로 국제중학교는 귀족학교임이 더욱 명백해질 것이다. 만약 유지한다면 사회통합전형으로 선발된 학생들의 학비를 어떻게 감당하는가가 문제가 된다. 만약 교육청이 지원한다면 이는 특혜가 된다. 단지 추첨에 선발되었다는 이유로 연간 천 만원이 넘는 학비를 지원한다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이러한 형평성의 문제는 현재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재단이 부담하기로 한 사회배려대상자들의 학비를 교육청이 부담하고 있다는 것은 부당하다. 그것은 전체 학생들에게 돌아갈 교육비가 국제중학교를 위해 쓰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재단이 부담한다고 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사회배려대상자의 학비를 교육청이 지원하는 부분은 재단 측의 애초의 약속대로 재단이 부담하도록 개선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성적 요인을 제거한 채 추첨으로 선발되는 경우 남는 것은 높은 학비를 감당할 수 있는 학생들을 위한 귀족학교라는 정체성뿐이다. 물론 글로벌 인재를 양성한다는 명분의 교육과정의 특성화의 의미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교육과정을 내걸었다고 해서 높은 등록금을 받으며 일부 계층을 위한 특별한 학교의 지위를 유지하도록 할 필요가 있는가?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학부모들의 부담이나 사립 재단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교육비를 부담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교육과정의 특성화는 모든 학교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일부 사립재단에 대하여 일부 계층을 배타적으로 선발할 수 있도록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방식은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이와 같은 원칙은 국제중학교뿐 아니라 자율형사립고 정책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제중학교 문제의 해법은 특별한 지위를 유지하도록 하는 예외적 방식이 아니라 본래의 위치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글로벌 인재 양성이라는 목적은 일반 중학교의 교육과정을 내실화함으로써 달성되어야 한다.
비리 혐의로 조사를 받던 영훈중학교 교감의 자살 사건은 안타깝다. 유서에서 “학교를 위해 한 일”이라는 말은 일부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영훈국제중학교 입시 비리의 원인은 학교 관계자들이나 학부모들의 개인적 양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구조적으로 생긴 문제이기도 하다. 성적과 돈의 교집합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모이다보니 국제중학교는 부유층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러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입학을 대가로 비리가 발생한 것이다. 이 문제는 아직 표면화되지 않았지만 대원 국제중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문제다. 이와 같은 비극을 태생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국제중학교의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는 것만이 문제 해결의 정석이 될 것이다.
2013. 6. 17.
(사) 좋은교사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