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초등학교 학업성취도 평가 재추진에 대한 논평

보도자료

[성명서] 초등학교 학업성취도 평가 재추진에 대한 논평

좋은교사 0 16672


학업성취도 평가 재추진에 앞서 부작용에 대한 대책이 선행되어야 함
교육청 간 학업성취도 점수를 비교하여 평가하는 것을 제외해야 함
학습부진학생 지원 예산이 해마다 줄고 있어 이를 보장하는 법을 제정해야 함
진단평가는 조기에 실시하고 입체적으로 진단하여 개별적 맞춤형으로 지원해야 함
  

교육부가 초등학교 학업성취도 평가를 재추진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학업성취도 평가의 명분은 예전에 밝힌 바와 같이 학습부진학생을 돕고 학교의 책무성을 강화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서 시행했던 학업성취도 평가가 그러한 목적을 제대로 달성했는가에 대해서는 쉽게 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실제로 학습부진학생을 돕기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미비한 가운데, 교육청 간, 학교 간 성적 비교를 통한 경쟁이 강화되다보니, 무리한 방식으로 학습부진학생을 줄이기 위한 문제풀이 방식의 교육이 성행하여 오히려 교육을 왜곡하는 문제가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좋은교사운동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습부진학생 지도가 효과가 있었는가에 대해 대다수가 부정적인 응답을 하였다.(초중고 교사 51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학습부진이 해결되지 않고 계속 반복된다는 것에 대해 96% 동의(매우 동의 64.3%, 비교적 동의 32.1%))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 교육 공약으로 초등학교 학업성취도 평가가 폐지되었다. 교육부는 과연 이러한 문제점이 충분히 해결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인가? 물론 원론적으로 학업성취도 평가의 필요성은 부인하기 어렵다. 국가 정책을 수립하기 위하여 학생들의 학력을 제대로 진단한다는 것은 매우 필요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평가로 인해 점수 경쟁이 과열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대비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현 시점에서 다시 학업성취도 평가를 재추진한다고 할 때 과연 과거에 발생한 부작용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이 마련되어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제대로 된 학업성취도 평가가 되려면 다음의 전제 조건을 충족하여야 한다.
첫째, 학습부진학생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핀란드의 경우 학습부진학생을 돕기 위한 전문적인 교사를 양성하여 지원을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읽기 부진을 해소하기 위하여 막대한 연구비를 들여 정책을 추진하였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도 학습부진학생들을 돕기 위한 정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력향상중점학교나 학습클리닉 등을 통한 정책이 얼마나 효과를 거두었는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단적으로 보면 학습부진학생을 지도하는 것은 훨씬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는 임시적 학습보조교사에 의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리고 내용적으로도 학생에 대한 개별적 맞춤형 진단과 처방이 아닌 획일적인 시험대비 문제풀이 중심으로 진행되다보니 학습부진학생이 오히려 더 공부를 싫어하는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 교사들의 헌신성에 기인한 성과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를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그나마 지원되던 예산도 점차 줄어들었다. 정진후 의원실에 따르면 기초학력 보장 관련 교육재정이 3년간 32% 감소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일보 2014.10.3.) 현재 교육재정 위기로 인하여 학습부진학생들 돕기 위한 예산은 더욱 축소될 전망이다. 한마디로 학습부진학생을 돕기 위한 학습안전망은 전혀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평가만 하겠다는 식이다.

둘째, 학업성취도 평가로 인해 교육청 간 성적 비교 경쟁을 통한 비교육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성적 공개에 대해서는 신중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청 평가 항목에 학업성취도 점수를 제외하고, 학교정보공시 항목에서도 학업성취도 점수를 제외하여야 한다. 그렇게 할 경우 학교의 책무성이 약화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와 교사의 책무성은 일회적인 학업성취도 평가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정기적인 학교만족도 평가나 실제로 학습부진학생들에 대한 지원체계에 대한 평가 등을 통해 달성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학업성취도 평가 자체를 개선하여야 한다. 국영수를 중심으로 지필평가로만 진행되다보니 편중된 측면의 평가만 될 수 있다. 의사소통능력이나 학업흥미도와 같은 장기적으로 중요한 역량에 대한 평가가 되지 않음으로 인해 학교 현장에서 소홀하게 취급될 수 있다. 사실 교육과정에서 제시되는 성취기준은 폭넓은 분야를 평가하도록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평가하기 쉬운 영역에만 집중함으로써 교육의 왜곡을 불러온 것이다.

넷째, 진단평가를 내실화하여야 한다. 현재 교육청별로 자율적으로 시행하도록 하는 진단평가를 의무화하여 진단에 따른 처방과 지원이 체계적으로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진단평가에는 가급적 조기에 개입하여 실패를 미연에 방지하여야 한다. 그리고 단순한 지필평가 외에 난독증 검사 등을 비롯하여 입체적인 진단이 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다섯째, 국가 수준에서 학습부진학생을 지원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하여야 한다. 교육기회균등은 헌법적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학습이 느린 학생은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영재를 위한 교육은 영재교육진흥법을 통하여 지원하는 반면 학습부진학생을 위한 법은 미비하여 학습부진학생을 위한 정책의 일관성이 없고 예산 확보도 어렵다.

여섯째, 근본적으로 교육과정을 개선해야 한다.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기초학력(50점 미만)의 비율이 수학의 경우 중학생의 30%가 넘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세계적으로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대한민국 학생들과 우수한 교사들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30%의 학생이 기초적인 성취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것은 교육과정에 근본적 문제가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지나치게 어렵고 과다한 교육과정이 다수의 실패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양이 많고 어려운 교과서는 진도 위주의 수업을 조장하고 완전학습을 방해하여 지속적인 학습부진학생 양산의 근본적 원인이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학습부진학생을 지원하기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고, 단순히 점수 경쟁으로만 몰아갈 위험이 높은 학업성취도 평가 재추진은 재고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하여 학업성취도 평가를 하지 않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학업성취도 평가가 축소되면서 학습부진학생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줄고 있는 것은 어떤 면에서 더 큰 문제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조용하게 내실있게 시행하는 동시에 학습부진학생을 위한 획기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2014년 12월 26
좋은교사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