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공론화 시민숙의단 최종숙의 참여기] 아이들의 삶을 위한 교육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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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공론화 시민숙의단 최종숙의 참여기] 아이들의 삶을 위한 교육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좋은교사 0 1160

대입공론화 시민숙의단 최종숙의 참여기

 

아이들의 삶을 위한 교육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김영식(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

 

0. 대입공론화 최종 숙의 과정 잘 다녀왔습니다. 

 

1. 시작 전부터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좋은교사운동,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등이 함께 숙의단에게 전달할 신문광고를 내고, 신문을 나누어 주려 천안까지 갔으나 숙의단 관계자들이 통로를 막고 들여보내주지 않는 바람에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의 이 간절함을 저들이 조롱하는 것만 같고 무언가 억울함과 원통함이 올라왔습니다. 마음을 모아주고 있는 분들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책임감들이 복잡하게 자리 잡았던 것 같습니다. 

 

2. 흔히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말하는 구도와 여론 지형을 반영해 구성했다는 숙의단 491. 

시민숙의단은 제가 보기에 진지하게 참여하려는 의지가 느껴졌습니다. 일부 시큰둥한 분들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상당수 숙의단 시민들은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참여했다고 생각합니다. 

 

3. 첫날 숙의단끼리 분임토의하면서 초기 생각을 나눈 결과들을 발표했을 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언론에 떠돌아다니는 학종을 신뢰할 수 없다”, “선발은 공정이 중요하다라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간혹 아이들의 삶이 중심이 되는 선택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라는 말이 있었으나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4. 토요일 첫 시간. 의제 2팀의 분위기는 무겁게 시작했습니다. 과연 우리의 이야기들이 저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을지. 의제 2팀의 제가 기조발제를 맡았습니다. 수의제 2에서는 수능 정시를 확대했을 때 현재 교실과 미래의 교실 모습을 예상해보았고, 미래 사회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왜 지금의 제도를 바꿔야 하는지를 발표했습니다. 특히 수능은 공정하고 저소득층에 유리하다는 논리의 모순을 밝히는 데 집중했고, 상대평가 체제 속에서 경쟁에 허덕이는 아이들, 특히 최상위 성적을 가진 아이들이 더 할 필요가 없는 공부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는 현실의 부당함을 이야기하며 이제는 점수 외에 다른 역량도 함께 평가하는 선발 시스템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절대평가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의제1과 의제4는 학종의 불공정성과 수능 정시 비율의 확대가 필요함을 주장했고, 의제 3은 대학이 새로운 인재상에 맞게 다양한 능력을 가진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학종을 확대해 왔으며,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충실하게 운영될 수 있는 입시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가며 수능 정시 비율의 과도한 확대를 반대했습니다. 첫 날은 의제 1과 의제 4개 내어놓는 논리와 단어들이 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을 가진 참여단 마음에 쏙쏙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의제 1과 의제 4의 주장들이 내어놓는 여러 데이터들은 분명 사실과 다르거나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공론화위원회에 팩트체크 팀이 없어 제대로 된 검증을 하기 어려운 점이 아쉬웠습니다. 추후 다른 주제의 공론화가 진행된다면 반드시 팩트체크팀을 운영해 참여단에게 검증된 자료와 해석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5. 우리는 이후 질의응답 시간과 상호토론 시간을 이용해 의제 1과 의제4가 내어놓는 정보들을 반박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학종 비리와 같이 일부의 사실을 전체로 과장하는 문제, 학생부 기록에 대한 불신들, 수능 전형이 일반고에 유리하다와 같은 왜곡된 정보들, 학종이 금수저 전형이라고 하는 말의 실상들을 시민참여단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6. 그 날 저녁부터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는 것 같은 느낌이 생겼습니다. 수능 비율이 늘어나는 것이 반드시 공정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 아이들이 입시로 인해 힘들게 사는 현실에 대한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수능이 5:5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참여단의 의견을 들을 때나, 이와 반대로 의제 2팀의 주장을 지지하는 발언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핑 돕니다. 이 땅의 아이들은 언제까지 경쟁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야 하는지, 자신들도 고통스럽게 겪어온 그 시간을 왜 다시 후세대에게 남기려고 하는지 안타깝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7. 주일 오전. 여느 때였으면 교회에 가기 위해 한창 준비하고 있을 그 시간에, 의제 2팀은 한 자리에 모여 숙의단의 질문들에 대해 답변할 내용들, 마무리 발언에 내어놓을 이야기들을 함께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다들 무겁고 긴장된 마음으로, 마지막 하나라도 더 해야 할 이야기는 없는지를 생각하는데, 새로운 생각들은 나지 않고 발표자들에게 이제 모든 짐을 맡길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참학 회장님께서 우리 기도라도 하자라고 제안하셨고, 7명이 함께 모여 기도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분이 있었음에도 함께 기도하자는 제안에 흔쾌히 동의를 했고, 제가 대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름만 불렀는데로 마음이 울컥합니다. “어두움 속에서도 빛을 보이시고 길을 내시는 주께서 우리 시대 교육에 길을 내어 주시고, 우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숙의단의 마음에 깊이 울려지게 해 주십시오. 이 시대 아이들을 위한 진정한 교육의 길이 만들어지게 해 주십시오. 아이들의 고통을 덜어줄 길을 찾게 해 주십시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내용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8. 20분의 질의응답 시간. 고등학교 수학 교사와 지방 일반고에서 학종으로 대학에 입학한지 얼마 안 되는 대학생이 10분씩 나누어 발표했습니다. 교사 발표자는 먼저 시민참여단의 마음속에 있는 교육에 대해 원망하고 불신하는 마음과 교사들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오늘 이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모든 교사가 들어야 할 이야기이고, 거기에 대해 우리 역시 같은 책임 안에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교사들이 아이들과 만들어 가고 싶은 교육이 무엇인지 잘 말씀드렸습니다. 

두 번째는 학종을 경험한 대학생이 발표를 맡았습니다. 상대평가 체제에서 친구들이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수능이 아무리 좋은 문제가 나와도 이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문제 푸는 요령을 외우면서 공부하는 현실, 지방 일반고 학생들이 수능을 통해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와 같은 내용을 참여단에게 설명했습니다.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았고, 그 질의응답이 끝나고 나서 시민숙의단 여러 명이 그 학생을 격려하며 함께 사진을 찍자며 나서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시민참여단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여기에다가 김제동의 톡투유에 출연하는 한양대 입학처장 정재찬 교수도 당일에 와서, 왜 대학이 학종으로 아이들을 뽑는지, 학교 교육을 성실하게 받은 아이들이 대학에 올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왜 필요한지를 이야기하는데 이 부분도 사람들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9. 오후에 최종 분임토의 결과로 각 의제의 기대효과와 한계, 숙의단이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기준이 무엇인가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 날과는 달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행복하도록’, ‘일부 극단적 주장에 선동되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제도’,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제도’, ‘아이들의 행복’, ‘변화와 안정성’, ‘안전하고 공명하게 선택’, ‘전국적으로 기회가 균등하게 부여’, ‘학생 입장에서 부담 줄이는 제도’,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제도’, ‘각 의제가 갖고 있는 장점을 보고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가’, ‘가치있는 일을 촉진할 수 있는 제도’, ‘미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안 선택’, ‘모두가 다른 아이들에게 적합한 제도와 같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공정한 제도와 투명한 제도의 중요성도 여전히 많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발언에서 아름다운 배움 박재원 소장님이 우리 팀의 발표자로 나서 여러 불신의 요소들이 있지만 여전히 학교교육만이 희망이다. 학교교육을 살려야 된다. 믿어주고, 못하면 또 채찍질하면서 교육을 살리는 길로 나서야 한다. 아이들이 배움이 중요하다.” 등의 이야기로 발언을 마무리했고, 한양대 정재찬 교수가 방문객이라는 시를 인용해서 대학에서 학생부가 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아이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오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것을 입학 담당자들에게 늘 강조한다고 했으며, “앞으로도 그런 마음으로 입학전형을 실시할 것이니 대학에 맡겨달라.”라고 끝맺음했습니다. 

 

10. 이후 설문조사의 과정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나와야 했습니다. 2팀 내부적으로는 할 것은 다했다.’ 의 마음이었습니다. 무겁게 시작했지만 웃으며 마무리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결과가 어찌 나올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조금은 기대도 해 봅니다. 

 

11. 23일 내내 많은 분들이 기도해 주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들을 숙의단이 잘 들어주었고, 뒤로 갈수록 우리를 지지하고 있다는 시민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격려해 주는 시민들도 많았습니다. 의제 2팀 내부의 팀워크도 좋아서 갈등없이 서로의 장점들을 살리는 방식으로 협업할 수 있었고, 서로의 간절함으로 하나가 되었고, 중간중간 토론자를 바꾸기도 했던 결정들이 잘 통하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12. 마지막으로, 공론화는 끝났지만 일을 여기까지 끌고 온 교육부와 정부 여당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들의 소리를 들어 정책을 결정하는 취지는 매우 소중한 가치입니다. 그러나 이번 공론화의 주제는 국민들이 바라는 교육이 무엇인가’, ‘우리 사회가 어떤 교육을 필요로 하는가’, ‘우리 교육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와 같은 교육의 방향성을 묻지 않았습니다. 이런 공론화였다면 역사가 될 만한 중요한 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주제는 오직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선발의 과정을 어떻게 공정하게 할까?’입니다. 선발의 과정에서의 공정함이란, 범죄들을 잡아 처벌할 수는 있어도 모든 이에게 공평하기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 시험이든 유리한 시험이 있고, 불리한 시험이 있으며, 그 시험을 준비하는 환경도 다르며, 소질과 적성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선발의 과정을 공론화에 붙이고 나니, 모든 이해관계가 얽히고 얽혀, 온갖 거짓 정보들이 난무하는 시장통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의 역할은 그저 싸움의 판 만들어 주는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마치 자신들은 로마의 귀족이 되고 교사, 학부모, 대학관계자, 시민단체들은 노예 검투사가 되어 피터지게 싸우게 하고 모두 죽은 싸움과도 같은 장면입니다. 싸울 수도 없고 안 싸울 수도 없는 이런 상황을 연출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 공론화는 역설적으로 ', 대한민국의 교육부는 더 이상 없어도 되는구나'를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또한 정부 여당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육에 대한 철학이나 비전, 미래 사회를 대비할 교육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전혀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