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대통령실 교육비서관 내정설이 돌았던 전직 사교육업계 인사인 이현 씨(스카이에듀 설립자, 현 우리교육연구소 이사장)가 이번에는 대통령실 몫의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으로 내정되어 인사 검증을 받고 있다는 제보가 여러 경로를 통해 입수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제보가 사실이 아닐 것으로 기대합니다. 얼마 전까지 교육비서관 내정 논란의 당사자가 다시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으로, 그것도 대통령실의 추천으로 내정되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더욱이 이러한 결정은 대통령의 뜻과 정면으로 배치되어 후일 큰 부담이 될 것입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대한민국 중장기 교육정책을 설계하는 핵심적 기구이며, 교육의 백년지대계를 세우는 자리입니다. 이런 자리에 내정되는 인사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조건은 정책이 지향하는 방향과 삶의 궤적이 일관되게 맞아떨어지는 ‘진정성’입니다. 대통령이 강조한 ‘과도한 경쟁 완화’, ‘사교육 의존 구조 개선’, ‘다음 세대를 위한 공적 모델 수립’이라는 국가적 과제와 보조를 맞추는 인물이 세워져야 합니다. 이러한 방향이 국민에게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의 삶과 궤적 또한 그 방향성과 충돌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우리는 수차례 역사적 경험을 통해 확인해 왔습니다.
대통령실이 추천한 이현 후보자는, 그동안 걸어온 길이 사교육계의 이해를 상당 부분 대변해 온 것으로 비춰져 공교육의 중장기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 국교위의 취지와 자연스럽게 충돌하는 지점을 안고 있습니다. 사교육 문제는 그동안 수많은 전문가가 온 힘을 기울여도 풀기 어려웠던 구조적 난제임을 생각할 때, 사교육 이해관계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인물이 국교위에 투입되는 것은 공교육 현장에서 묵묵히 애써 온 교사들에게 깊은 박탈감을 줄 뿐 아니라, 국교위가 국민의 신뢰 속에서 장기적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출발점에서 큰 부담을 더하는 결정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앞서 교육비서관 인선이 철회된 것 또한 이러한 우려가 반영되었을 것이며, 앞으로 국교위에서 중장기 정책이 논의된다면 그 과정에서 해당 인사는 오히려 국교위가 넘어야 할 ‘벽’으로 기능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난 9월 11일,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 때 교육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교육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과도한 경쟁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과도한 경쟁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이 경쟁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할 것이냐, 수시로 할 거냐, 정시냐 할 거냐, 정시는 어떻게 할 거냐, 수시는 어떻게 할 거냐, 비중은 어떻게 할 거냐 온갖 논쟁거리가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은 결국 현재와 같은 최악의 경쟁 상태를 해결하지 않으면 영원히 해결이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입시제도 자체를 어떻게 개편하는 게 문제를 해결하는 거냐, 거기에 별로 큰 비중을 두지 않습니다. 결국 일자리 영역에서 어떻게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 낼 거냐 어떻게 더 많이 성장할 거냐 어떻게 더 많이 기회를 골고루 나눌 것이냐 결국 그 문제에 귀착됩니다.
그래서 저는 교육 문제에 대해서 약간 의도적으로 전면에 얘기를 안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해결을 하지 않으면서 논쟁을 촉발하며 자칫 잘못 건드리는 순간 이념 투쟁의 장으로 변질되기도 해서 그렇습니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지금까지는 제 기능을 잘 못했습니다. 교육위원회가 그런 근본적인 해결책 또는 방향 전환을 해 보자고 한 건데 국가교육위원회가 정상화되면 거기서 논의하면 좋겠습니다.”
대통령의 발언은 이렇게 요약됩니다. “입시 방식 논쟁보다, 과도한 경쟁 완화와 기회의 공정한 배분이 핵심이며, 그 근본적 해결책을 국가교육위원회가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이현 씨를 대통령실 몫으로 내정한다면, 이는 대통령이 제시한 방향을 스스로 부정하는 결정이 되고 맙니다. 그는 정시 중심 경쟁을 옹호하며 막대한 사교육 산업의 이익을 경험한 인물로서 국교위 위원이 되는 순간, 국민은 대통령의 의중을 “정시·사교육 친화 정책 옹호”로 해석하게 될 것이며, 이는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신뢰 자체를 크게 훼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국가교육위원회 21명 전체가 동일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추천 경로와 현실 정치의 균형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다양한 인사가 들어올 수 있다는 점과, 대한민국 교육 발전의 핵심 전제인 ‘사교육 극복’의 방향성을 근본에서 흔드는 인사가 대통령실 몫으로 들어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대통령실이 논란을 예상하면서까지 이 인물을 선택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국교위에 필요한 인사는 경쟁을 완화하고 공교육을 복원하며, 다음 세대를 위한 공적 모델을 정립하는 데 힘을 실어줄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인사입니다. 교육은 더 이상 불필요한 갈등을 소비할 여유가 없습니다. 산적한 과제 앞에서 국교위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인선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대통령실이 이번 결정을 다시 한 번 신중히 재고하기를 요청합니다.
우리는 아직 제보가 최종 사실이라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실 또한 이러한 인선의 파장을 모를 리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제보가 사실이라면, 대통령실은 신속하게 추천을 멈추어야 합니다. 정책은 결국 ‘사람’으로 말하는 법입니다. 인사는 방향이고, 방향은 미래입니다.
우리의 고언을 가볍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의 등장으로 대통령이 우려했던 교육 논쟁이 촉발되고 비생산적 갈등이 확산될 것입니다. 막을 수 있을 때 막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끝까지 지켜보며 필요한 대응에 나설 것입니다.